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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택배 무섭게 눈이 내리던 어느 겨울날, 창문 앞에 서 있었다. 내 입김에 맞춰 창문에는 작은 서리가 생기다 사라졌다. 크리스마스이브가 얼마 남지 않아 밖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손에 짐을 잔뜩 든 채 지나다녔다. 나는 한참 그들을 바라보다 누가 볼까 봐 얼른 불을 끄고 다시 창가에 섰다. 하늘은 여전히 굵은 눈이 끊임없이 내렸다. 한참을 서 있다 손을 가만히 창가에 대어보았다. 차가운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손을 떼니 손자국이 창문에 있다가 곧 사라졌다. 암막 커튼을 치고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완전한 어둠이었다.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눈을 몇 번 끔벅 거리다 감고 잠들기를 간절히 바랐다. 싸늘한 공기에 이불을 덮고 손바닥을 서로 마주 잡았다. 포개진 손들에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 2024. 9. 9.
[단편 소설] 세 마리의 개 ‘우루룽... 쾅!!’ 레오는 깜짝 놀라 귀를 쫑긋 세웠다. 거센 천둥소리가 집을 뒤흔들며 지나갔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어둠이 깔린 창밖은 번개가 칠 때마다 하얗게 일렁였다. 레오는 창문 너머를 한참 바라보다가, 그제야 소파 옆 구석에 자리를 잡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몇 해가 지났지만 천둥소리는 여전히 레오에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창문으로 아빠가 오나 살피던 치즈와 모카도 이내 레오 옆에 자리를 잡았다. "정말 지독한 비야," 모카는 엎드려 발을 포개며, 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난 비 오는 날 좋던데! 아빠가 까까를 주잖아!" 치즈는 혀로 코를 핥으며 킥킥 웃었다. "아빠는 언제 오는 걸까?" 모카는 창문 너머로 머리를 돌리며 중얼 거렸다."요즘 자주 늦긴 했어. 우리 밥을 잊은 건 아니겠지? .. 2024. 9. 9.
[단편 소설] 아이는 혼자 남아 아이는 마루에 앉아 바다가 출렁이는 모습을 바라 보았다. 아버지는 먼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떠났고 어머니는 아침 일찍부터 시장에 채소를 팔러 나갔다. 아이는 봉지에 손을 넣어 쌀 과자를 하나 꺼내 오도독 씹어 먹었다. "점심 차려 놨으니까 꼭 챙겨 묵으레이-" 아이는 흘끗 쇠로 된 밥상을 바라 보았다. 밥상에는 된장찌개, 김, 간장 그리고 밥이 무지개색 밥상보로 덮여 있었다. "조금 기다렸다 어무니 오시면 먹어야지." 아이는 바다를 보며 중얼 거렸다. 마당에 순돌이가 꼬리를 흔들며 아이를 쳐다 보았다. 아이는 마루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고 순돌이에게 다가갔다. 순돌이는 아이의 다리로 다가 다리를 핥았다. 아이는 순돌이의 목줄을 잡고 대문을 나섰다. "아부지 보러 가자-" 아이는 오른손에는 목줄을, 왼손에.. 2024. 9. 9.
[단편 소설] 물음표 인간 항상 이유가 궁금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누구나 한 번씩 겪는 일인가? 시간이 정말 모두 해결해 줄까?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나이에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맞닥뜨리는 일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 영향을 준다.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불쑥불쑥 올라오는 기억들은 너무나 생생해서 그때 있었던 대화들, 냄새, 날씨, 색깔, 촉감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기억에서 나올 때마다 한참을 나는 누구인가, 지금은 몇 년도인가, 나는 어디 있고, 안전한 상태인가를 가쁜 숨이 진정될 때까지 되뇌어야 했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 일상에서도 가끔 나는 고장 난 로봇처럼 멈춰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정신 어딘가 처박혀있는 나를 끄집어내서 현재의 나로 되돌려놔야 했다. 그래, 마치 고장 난 로봇 같은 느.. 2024. 9. 9.
[단편 소설] 소리 "소리는 어떻게 듣는 거야?" 아이가 물었다.엄마는 천천히 아이에게 고개를 돌리며,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잠시 생각했다. 이내 머리를 쓰다듬다가, 아이의 귀를 살짝 만졌다. "소리는 이 귀를 통해서 듣는 거야." "세상에 모든 것들은 소리가 있어?" 아이가 다시 물었다. "그럼" 엄마는 끄덕였다. 엄마는 아이를 창가로 데려갔다. 창문 밖에는 아이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웃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무슨 소리가 들리니?" 엄마가 물었다. "저건 즐거운 소리야." 아이가 답했다. 아이는 한참 밖에 뛰어놀던 아이들을 보다가, 창틀에 있는 화분으로 눈을 옮겼다. "엄마, 꽃에도 소리가 있어?" "그럼.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아도 .. 2024. 9. 9.
[단편 소설] 체벌 (feat. 사랑의 매) 종종 사람들은 '말'의 힘을 잘 모른다.  무례한 말들을 마구 내뱉고는 자신은 솔직한 사람이고, 뒤 끝이 없는 쿨한 성격이라고 말을 하곤 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 말의 힘은 더 커지는데, 마치 날카로운 칼과 같이 심장을 훑고 들어온다. 진짜 칼이라면 뺄 수 있겠지만, 말은 영원히 뺄 수 없는 투명한 칼과 같다. 그리고 가해자가 가까운, 특히 부모님이면 그 날카로움은 더해진다. "오늘도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구나, 리" 등 뒤로 어머니의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화들짝 놀란 나는 얼른 가슴을 쳐다보며 손으로 더듬거렸다. "뭐 하는 거니?" 신경질적으로 쿵쿵 거리며 나에게 다가온 어머니는 나를 돌려세우며 물었다. 어머니는 답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려 할 때마다 어머니는 답답하다는 듯 숨.. 2024.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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