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사람들은 '말'의 힘을 잘 모른다.
무례한 말들을 마구 내뱉고는 자신은 솔직한 사람이고, 뒤 끝이 없는 쿨한 성격이라고 말을 하곤 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 말의 힘은 더 커지는데, 마치 날카로운 칼과 같이 심장을 훑고 들어온다. 진짜 칼이라면 뺄 수 있겠지만, 말은 영원히 뺄 수 없는 투명한 칼과 같다. 그리고 가해자가 가까운, 특히 부모님이면 그 날카로움은 더해진다.
"오늘도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구나, 리"
등 뒤로 어머니의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화들짝 놀란 나는 얼른 가슴을 쳐다보며 손으로 더듬거렸다.
"뭐 하는 거니?" 신경질적으로 쿵쿵 거리며 나에게 다가온 어머니는 나를 돌려세우며 물었다. 어머니는 답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려 할 때마다 어머니는 답답하다는 듯 숨소리를 거칠게 내며 정신 차리라고 내 머리를 쥐어박았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답을 하며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못마땅하다는 듯 내려다보며 쯧- 짧게 혀를 찼다.
"네 사촌은 저번 시험에서 100점을 받았다던데. 넌?" 어머니가 물었다.
어머니가 묻자마자 몸은 심장소리로 쿵쿵 떨렸다.
몰래 숨긴 시험지를 어머니가 발견하신 건가? 아니면 누가 내 점수를 말했나? 망할, 그 계집애가 말한 게 분명해! 이모에게 벌써 말했을 거야. 나불대며 자랑하기 좋아하는 이모가 아니면 누가 말했겠어?
대답 없는 나를 보는 어머니의 눈길에 점점 얼굴에 핏기가 가시는 느낌이 나고, 현기증이 났다.
"매를 가져와."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천천히 골프채를 움켜잡았다.
어머니에게 다가가는 시간은 마치 시간이 늘어져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대로 골프채를 들고 어머니를 내려치는 상상을 하였다. 내가? 어머니를?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지금 내 모습을 거울로 본다면 정말 기괴한 모습일 것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몇 대 맞을 거니?"
몇 대 맞을 거야? 몇 대 맞아야 하나? 왜? 나는 맞아야 해. 시험을 못 봤으니까? 아니 시험지를 숨겼으니까? 나는 왜 맞아야 하지? 내가 잘 못했으니까. 이런 질문에도 답을 못하다니. 이러니 내가 시험을 못 쳤지. 나는 공부를 못 해. 나는 그래서 맞아야 해.
답을 못해 어쩔 줄 모르는 내 모습에 어머니는 뺨을 때렸다.
"손을 내밀어"
어머니에게 혼나는 그 순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잘못했다 빌기를 수십 번, 소리를 지르다 소리를 지른다고 또 맞기를 몇 번, 머리채를 여러 번 잡히며 이리 쿵 저리 쿵 하기를 몇 번, 몇 분인지 몇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는 그 순간들 말이다.
그렇게 혼이 난 후에는 다시 내 방으로 가 공부를 해야 했다. 항상 같은 순서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 옆에 앉아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시곤 했다. 많이 운 날은 눈이 건조해져서 쉽게 잠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혼나고도 조는 나를 보며 질린다는 듯, 물을 뿌리거나 뒤통수를 내리치셨다.
어머니가 옆에 있다가 잠시 화장실이라도 갈 때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억울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곧 돌아오시니 얼른 눈을 크게 뜨며, 울지 않으려 집중하였다. 그래도 어김없이 눈물이 터져 나오는 날에는 나도 화장실을 가야겠다며 얼른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화장실에 있는 시간은 천국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있지는 못했다.
자리로 돌아와 퉁퉁 부어서 잡히지 않는 연필을 부여잡으며, 의미 없는 글자 밑에 줄을 치며 '열심히 공부하는 딸'을 연기하기 시작한다. 나는 이 연기를 곧 잘하곤 했다. 연기를 하는 동안 나는 다른 생각으로 빠져들었다.
퉁퉁 부은 손을 보며, 몇 대를 맞은 후부터는 손바닥에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는지 기억을 해보려 애썼다. 다른 날 손바닥을 60대 정도 리코더로 맞다가 더 이상 아픔이 느껴지지 않아 멍하니 손바닥을 보고 있으니, 그런 나를 알고 어머니는 발바닥을 때리기 시작하였다. 그날 이후 나는 아프지 않을 때도 아픈 척을 하는 연기를 하였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조금만 맞아도 기절을 하던데, 나는 기절을 하지 않는 걸 보니 그렇게 심하게 맞는 건 아닌 건가?
잘 모르겠다. 그 누구에도 물을 수 없다.
내가 무기력하게 맞는 동안 어머니도 나를 때릴 때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때리는 행위에만 집중하셨다.
울며 도망 다니는 나를 붙잡고는 '조용히 해'라는 말 외에는. 그리고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해를 잘 못하는 나를 어머니가 혼낼 때, 화가 난 듯 아버지 성큼성큼 다가와 어머니를 밀쳤다. 그리고 나의 팔목을 잡고 질질 끌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나에게 방 끝에 있던 야구 방망이를 들고 내려치기 시작하셨다.
나는 고양이에게 쫓기는 쥐 마냥 방 이리저리를 도망 다녔다. 그러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을 때 팔을 들며 막았고 그대로 내 팔은 부러졌다. 팔을 붙잡고 바닥을 뒹구는 나를 보며 아버지는 멈칫하시더니 씩씩 거리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때 나는 체벌이 짧게 끝난 것이 다행이라 생각을 하였다.
학교에 있는 동안은 마치 체벌방에 들어가기 전 대기방에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점심시간이 끝난 후부터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는데 하교를 한 후에는 집에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10대 아이가 갈 곳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어느 날, 집에 들어가면 또 맞을게 뻔하니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주머니를 털어 과자 한 봉지를 사고 집 주변 놀이터 미끄럼틀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밤이 늦어지며 길거리에 사람이 줄어들자 나도 교복을 털며 일어났다. 고개를 들어 집 창문을 보니 불이 켜진 것이 보였다. 나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파트 층 계단에 앉아서 가방을 꼭 끌어안았다. 내가 앉자 계단 위 불이 잠깐 켜지다 이내 곧 꺼졌다.
어두 컴컴한 계단 속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그 침묵이 평온하게 느껴졌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런 게 죽음이라면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밑에 층에서 불이 켜지는 소리가 났고, 어머니는 나를 보며 '집에 들어와'라고 말씀하셨다.
'들켰다'라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될지 불안해하며 현관으로 들어오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에 들어가 주무셨다. 나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대로 내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도 어머니만큼 키가 켜졌다.
그날도 어김없이 어머니에게 머리를 맞고 있을 때 나도 모르게 어머니를 힘껏 밀쳤다.
당황한 어머니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더 맞을 줄 알고 얼어있는 나를 보시더니 곧 내 방을 나가셨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나를 때리지 않으셨다. 그리고 나에게 완전히 신경을 끄셨다. 내가 몇 점을 받아오든 묻지 않으셨고, 학원에 다니고 싶지 않다고 하면 그러라고 하셨다. 처음 내가 느낀 감정은 해방감이었다. 하지만 이 감정은 이내 곧 '버려졌다'라고 느껴졌다.
어찌 됐건 그만 맞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집에 들어오기 전 현관문에 귀를 대고 집에 누가 있나 확인하는 습관도 점점 줄어들었다. 어떤 날은 마구 화가 난 채 이렇게 간단하게 없어질 것이었음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걸,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로 인해 시작된 체벌은 나로 인해 끝이 났다. 내가 잘못인 줄 알았던 체벌은 나의 반항으로 없어지게 되었다.
내 공부를 맡는 동안 어머니는 일을 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어머니를 밀친 이후로 다시 일을 시작하셨다. 아침 일찍 나간 후 밤늦게 들어오시며 나랑은 한동안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머니의 손에서 벗어난 나는 브레이크가 없는 차 같았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잠이 올 때 일찍 자도 되는지, 어떤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지, 친구를 사귈 때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등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몇 년간 성인이 되어서까지 여러 실패와 경험을 하고 나서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알기 시작하였다.
어머니는 그동안 나와 대화를 잘 하지 않으셨지만, 가끔은 가벼운 주제들로 이야기를 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우리는 사이좋은 모녀였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일하는 이야기를 종종 하셨고, 나는 가만히 듣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TV에서 계모의 아동학대로 3살 남자아이가 트렁크 가방에 갇힌 채 질식사를 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나는 가만히 듣다 어머니에게 "그때 왜 그랬어?"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정말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왜 그렇게 때렸어?"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진정시키며 다시 되물었다.
어머니는 이내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시더니 답했다. "다들 그러잖아. 넌 그렇게 가끔 예민하더라. 사랑의 매라고도 하잖아. 모두에게 그런 순간들이 있지."
나는 입술을 달싹 거리며 할 말을 찾다 이내 포기하고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실패했어."
어머니는 화가 난 채로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니? 사과라도 하라는 거야?"
시간이 몇 년이나 흘렀지만 나는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집을 뛰쳐나왔다.
'짧은 소설-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편 소설] 택배 (6) | 2024.09.09 |
---|---|
[단편 소설] 세 마리의 개 (3) | 2024.09.09 |
[단편 소설] 아이는 혼자 남아 (1) | 2024.09.09 |
[단편 소설] 물음표 인간 (8) | 2024.09.09 |
[단편 소설] 소리 (2) | 2024.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