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이유가 궁금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누구나 한 번씩 겪는 일인가?
시간이 정말 모두 해결해 줄까?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나이에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맞닥뜨리는 일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 영향을 준다.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불쑥불쑥 올라오는 기억들은 너무나 생생해서 그때 있었던 대화들, 냄새, 날씨, 색깔, 촉감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기억에서 나올 때마다 한참을 나는 누구인가, 지금은 몇 년도인가, 나는 어디 있고, 안전한 상태인가를 가쁜 숨이 진정될 때까지 되뇌어야 했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 일상에서도 가끔 나는 고장 난 로봇처럼 멈춰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정신 어딘가 처박혀있는 나를 끄집어내서 현재의 나로 되돌려놔야 했다.
그래, 마치 고장 난 로봇 같은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란 말에 언제 그렇게 될지 답이 없는 상황과 누군가에게 던지는지도 모를 질문을 계속 되뇌곤 했다.
마치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난 차가 잔뜩 찌그러진 채, 자신이 언제 다시 원상복구가 될까 하고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냥 잊어버려. 누구나에게 나쁜 일은 일어나.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줄 거야"
어머는 고장 난 채로 멍하니 있는 나에게 와서 말을 하곤 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습관적으로 매일 아침 뉴스 기사들을 확인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딱히 흥미가 있는 주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감흥 없이 손가락을 튕겨낼 때 즘, 눈에 띄는 학교폭력 기사들을 나는 끝내 지나치지 못한다.
'같은 반 친구들이 괴롭힌 남중생, 결국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
감흥 없이 손가락은 계속 화면을 내렸고 댓글 창에서 멈췄다.
'자살은 왜 해? 도움이라도 청해보지. 요즘 세대는 마음이 너무 나약해.'
아무 생각 없이 답답한 마음에 쓴 댓글 한 줄이 나의 정신을 훔친다.
어떤 도움을 청해야 했을까? 괴롭힌다는 내 질문에 크게 신경 쓰지 말라는 답.
나는 괴롭다에 네가 예민하다는 답.
신체적인 폭력이 있었느냐는 말에 답할 수 없는 나.
나는 어떤 폭력을 당하고 있는 건지 구분할 수 없었고, 내가 힘든 이유에 대해서도 답을 내릴 수 없었으며, 도망칠 수 없는 늪에 빠진 것처럼 천천히 잠식되어갔다.
간단히 써진 댓글 한 문장에 나는 또 잠식되어 감을 느낀다.
학교를 그만둔 뒤, 집에서는 나로 인해 몇 가지 변화들이 있었다.
부모님은 나를 특별한 교육을 받는다고 주위에 말하기를 몇 년, 점점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친척들과의 만남을 피했다.
어머니는 나를 혼내보기도 하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기도 했다. 아빠는 이런 나를 보며 '여태 들인 돈이 아까워. 넌 투자할 가치가 없어졌다'라고 말했고 반응이 없는 나를 보며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런 변화들을 마치 TV 쇼를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로 인해 일어난 변화들이었지만 나는 그곳에 참여되어 있지 않다고 느껴졌다.
마침내 모든 소음이 없어지고 고요해졌을 때, 비로소 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에 대한 질문은 이내 곧 다른 질문으로 바뀌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영원히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임을 알게 되어서였다.
누군가 나에게 갑자기 물을 마시라며 주었을 때, 그 사람은 나의 마음을, 나는 그 사람의 마음을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게 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의 기반이었고,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받아들인 이후로는, 나에게 벌어진 일들에 대한 의문을 접게 되었다.
그들을 '이해'하면 결국 나도 그들을 '용서'할 수 있다고 믿었었고, 모든 걸 '용서'한 이후에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믿었었다. 이런 믿음은 학교를 그만둔 뒤, 20살이 되기까지 몇 년간 지속되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말 내가 그들을 이해하면 용서할 수 있을까? 내가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용서란 무엇일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과거인가 미래인가? 용서란 것은 내가 그 일을 잊게 되는 걸 말하는 건가? 잊어야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나는 어떤 한 점에서 멈춰있는가?
내가 찾는 답은 무엇일까?
과거에 당한 괴롭힘에서 지금까지를 생각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나 자신에게 묻는 아주 간단한 질문에도 명확하게 답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물음표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생각한 이후 나에게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마치 찌그러져 있던 차가 멍하니 몇 년을 흐른 뒤,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여기가 어디인지를 살펴보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은 그냥 둔 채,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질문들은 매우 간단한 것부터 당연하다고 발아들인 것을 포함한 질문들이었는데, 가령 하늘에 구름은 왜 떠있고, 매일 아침 해는 왜 뜨며, 배고픔을 느끼는 이유 등 보이는 것과 생각의 흐름대로 그야말로 모든 것에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이란 답은 나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질문이 생기면 내가 납득할 만큼 이해를 한 후 분류를 해서 다시 재정비를 해야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마치 내 주위 세상은 흑백처럼 보였는데,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컬러로 바뀌게 되었다. 그것은 아주 작은 부분부터였는데, 내 손에서 내가 잡을 수 있는 물건들, 그리고 길바닥, 하늘 이런 식으로 시야가 점점 더 넓어졌다.
그렇게 또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예전 TV 쇼를 보던 것 같던 집은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어머니는 이런 나를 보며 '드디어 원래 내 딸로 돌아왔구나'라고 말하며 좋아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말이 없으셨지만, 가끔 필요한 것이 있느냐고 묻곤 했다.
나는 그새 늙어버린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며 '이제 괜찮아'라는 말만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예전 내가 참여되어 있지 않던 TV 쇼에 출연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거울 속에 나는 여전히 물음표로 가득 찬 인간이며, 과거에 있었던 일에 답은 찾지 못했다. 어쩌면 '알 수 없음'이 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보이는 것들은 명확한데 스스로에 대한 질문은 답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이내 그 TV를 끈 채, 밖으로 시선을 다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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