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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글

[단편 소설] 아이는 혼자 남아

by 세납장 2024.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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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마루에 앉아 바다가 출렁이는 모습을 바라 보았다.

아버지는 먼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떠났고 어머니는 아침 일찍부터 시장에 채소를 팔러 나갔다.
아이는 봉지에 손을 넣어 쌀 과자를 하나 꺼내 오도독 씹어 먹었다.

"점심 차려 놨으니까 꼭 챙겨 묵으레이-"

아이는 흘끗 쇠로 된 밥상을 바라 보았다. 밥상에는 된장찌개, 김, 간장 그리고 밥이 무지개색 밥상보로 덮여 있었다.

"조금 기다렸다 어무니 오시면 먹어야지." 아이는 바다를 보며 중얼 거렸다.

마당에 순돌이가 꼬리를 흔들며 아이를 쳐다 보았다. 아이는 마루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고 순돌이에게 다가갔다. 순돌이는 아이의 다리로 다가 다리를 핥았다. 아이는 순돌이의 목줄을 잡고 대문을 나섰다.

"아부지 보러 가자-"

아이는 오른손에는 목줄을, 왼손에는 과자 봉지를 들고 바닷가로 걸어 갔다.

저 멀리 작은 배들이 보였다.

"아부지-!" 아이는 봉지를 든 채 손을 머리 위로 붕붕 흔들었다. 몇 번을 더 외쳐도 작은 배는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손을 내리고 한참을 작은 배들을 바라보다 순돌이의 멍멍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순돌이는 해변 뒤쪽에 있는 숲을 향해 짖었다. 아이도 숲을 향해 눈을 돌렸다.

흐린 날씨에 바람에 흔들리는 숲속의 잎들은 마치 빗소리처럼 들렸다.

"순돌아 가자" 아이는 목줄을 당겼지만 순돌이는 계속 숲을 바라보며 짖어 댔다.

무얼 보고 짖는지 알 수 없는 아이는 다시 숲을 바라 보았다.

저 멀리서 한 단발머리 소녀가 자신을 쳐다 보고 있었다.
그 소녀는 분홍색 티를 입고 있었는데, 자신과 순돌이를 번갈아보며 쳐다보더니 활짝 웃었다.

순돌이는 짖는 것을 멈추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소녀에게로 가자는 듯 목줄을 끌었다.

아이는 잠시 고민하고는 순돌이와 함께 그 소녀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안녕" 아이는 인사를 했지만 소녀는 말이 없었다.

머쓱해진 아이는 쌀 과자 하나를 소녀에게 내밀었다.
소녀는 쌀 과자를 보더니 받아 들고는 순돌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기서 뭐해?" 아이는 소녀에게 다시 물었다.

소녀는 대답이 없었다.

아이는 답답해서 소녀를 쳐다보았다. 소녀는 순돌이를 쓰다듬다 다시 일어나 아이에게 손짓을 했다.

"너 혹시 말을 못해?" 소녀는 천천히 끄덕였다.

아이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곧 비 올 텐데.."

그러자 소녀는 갑자기 숲 안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이는 당황스러워 소녀를 불러 보았지만 소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 갔다. 아이도 순돌이와 함께 따라 걸어갔다.

소녀가 멈춘 곳은 어느 큰 나무 앞이 었다. 나무에는 형형색색 종이가 끈들로 묶여 있었다.
아이는 소녀에게 물었다.

"야, 너 이름이 뭐야?"

소녀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도 손을 내밀자 소녀는 손가락으로 꼬물꼬물 자신의 이름을 썼다.
'해 나' 아이는 간지러운 듯 손을 오므려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해나 해나..'

아이는 자신의 이름도 말하려 소녀를 처다 보았다. 소녀는 아이 뒤쪽을 보더니 눈이 커졌다.
아이도 뒤를 돌아보자 마을 어른 둘이 아이와 소녀에게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느냐고 얼른 내려가라 소리치며 다가 왔다.

아이는 다시 뒤돌아 소녀를 바라보았지만 소녀는 이미 저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주춤하는 사이 어른들은 아이에게 얼른 내려 가자며 팔을 끌었다.

집에 돌아오니 시장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있었다.

"너 어디 갔었냐 밥은 왜 안 먹었어."

"그냥 저 뒤에-" 아이는 목줄을 개 집 근처에 묶으며 답했다.

그 날 이후 어머니가 시장에 나가시면 아이는 해나를 찾아 숲속을 향했다.

해나는 처음 보던 그 자리에 서서 아이를 항상 바라보았고, 아이는 신이나 해나에게 달려가곤 했다. 둘은 숲속 이곳 저곳을 놀러 다녔고, 나뭇잎을 줍기도 하고, 돌을 주워 쌓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 놀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하늘이 어둑어둑 해지곤 했다.

어느 날 밤, 해나와 한참 놀다 집으로 가니, 어머니는 검은색 옷을 입은 채 분주하게 움직이며 이것저것 챙기곤, 아이에게 집에 꼼짝 말고 있으라고 하였다. 아이는 알겠다고 대답한 후 내일은 해나와 뭘 하고 놀까 생각을 하다 잠에 빠졌다.

새벽 즈음 어머니는 다시 돌아 오셨고,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니, 숲속에는 절대 가지말그레이" 어머니는 단호하게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는 왜냐고 묻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너무 단호해서 고개만 끄덕였다. 어머니는 망설이더니 나에게 숲속에 아이를 잡아가는 요괴가 있다고 했다. 집에 혼자 있는 아이가 있으면 몰래 불러내어 잡아 먹는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문득 해나가 걱정 되었다.

'요괴가 해나를 잡아가면 어떡하지?'



아이는 어머니가 외출한 후 다시 숲으로 향했다. 멀리서 해나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해나에게 다가가 숲을 나가야 한다고 말을 하였지만, 해나는 고개를 내저을 뿐이 였다. 답답해진 아이는 해나에게 어머니가 해준 말을 그대로 말하며 요괴가 있으니 숲을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해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뒤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놀란 아이는 해나에게 재촉하며 빨리 나가자고 입을 뻐끔 거렸다. 해나는 뒤쪽을 잠시 보더니 아이의 손목을 잡고 숲 안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아이는 영문도 모른채 해나를 따라 갔다. 하늘은 금세 어둑 해지고, 숲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까각각- 까가각각 이상한 소리가 계속 아이와 해나를 따라왔다.
아이는 자꾸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러면 넘어질 것 같아 해나를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해나가 우뚝 멈추어 섰다.


아이도 멈춘 채 앞을 보니 어둑해진 나무들 사이로 기괴한 모양의 허수아비가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허수아비는 팔이 기괴하게 꺾으며 까각- 깍깍- 까가가각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해나와 아이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이는 너무 무서워 해나의 손을 꽉 쥐었고, 해나는 자신을 바라보더니 다시 그 허수아비를 바라보았다. 허수아비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아이는 그대로 기절을 하였다.



눈을 뜨니 아이는 안방에 누워있었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깨어난 아이를 보며 어머니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냐며 다그쳤다.

아이는 놀란 채 친구랑 놀고 있었다고 했다.
"친구 누구?" 어머니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해나" 아이는 답했다.

"누구라고?"

"해나" 아이는 다시 답했다.

어머니는 눈을 크게 뜬 채 아이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이내 눈물을 흘리셨다.

"해나... 해나...." 어머니는 해나의 이름을 읊으며 아이를 끌어안은 채 한참을 흐느꼈다.
잠시 후, 어머니는 어릴 적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사진 속에는 해나와 어머니가 함께 서 있었다.

"해나는 내 언니야" 어머니는 아이를 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니가 너를 구해 준거야" 아이는 그런 어머니를 그냥 말 없이 쳐다보았다. 그리고 어머니를 안았다.

아이는 슬퍼졌다. 왠지 그날 이후로 해나를 볼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숲속에 허수아비와 해나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부모님은 몇 번이고 다시는 그 숲에 돌아가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고 어머니가 장에 데리고 다니면서, 아이는 더 이상 그 숲에 갈 수 없게 되었다. 그 후로 아이의 가족은 도시로 이사를 하였고, 시간이 흐를 수록 해나의 기억은 점점 사라졌다.

하지만 가끔 까각- 까가가각- 불쾌한 소리는 귓가에 들리는 듯 하였다. 특히 지금처럼 혼자 있는 지금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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